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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서.

일상 2007. 8. 6. 21:53

"넌 연애할 생각이 있는거냐? 없는거냐? "
"글쎄... 지금은 별로야. 그냥 부지런히 돈이나 벌래."
"너 28살쯤 되서 내가 다른 사람 만나고 있을 때 만나달라고 해도 쳐다도 안본다. 알겠어?"

  그 상황에서 난 그냥 웃고 말았다.
지난 토요일에는 상대방이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기대하는 지 뻔히 알면서도 계속 모르는 채 하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 현재의 애매모호한 관계보다 발전되기를 원치 않으면서 심심치 않게 그 사람을 만나고, 그리고 나는 꽤나 너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잔혹한 것이고 미치게 하는 일인지 알고 있다. 뭐 내 경우와 절대 100% 같지는 않겠지만 나 역시도 그 비슷한 기분을 느껴봤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내가 과연 괴롭다고 엄살부릴 자격이 있는 것일까?

  다 알고는 있다. 솔직히 몇 년동안 끊임없이 잘해줘왔고. 내가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중계로 다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 나한테 아직도 이렇게 잘해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짓이고. 용기를 낸 행동이고, 진심어린 행동인지.
 
  하지만, 잔인하지만 어쩌랴. 아무리 그 분이 나에게 잘해주셔도 아무리 존경스러울 정도로 아량이 넓으셔도, 나에게는 직접적 위로가 되지 않는 걸. 애초에 A라는 것으로 상처를 받았을 때 전혀 다른 B로 아무리 이 짓 저 짓을 해봐도. 해결도 안되고 위로도 안되는 것이다. 내가 힘든 일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발버둥 쳐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도 아무 것도 해결이 안되는 거다. 누군가가 날 기분 좋게 해주려고 무지하게 애를 쓴다고 해도 그 때 뿐이지 어떻게 그게 완벽한 위로가 되겠는가. 결국 내가 그 기분 나쁜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방법은 그 일의 해결인 것을.

  예전에 수업시간에 '쇼핑중독'에 대한 비디오를 본 적이 있었다. 쇼핑중독의 시작은 이런 심리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내가 오늘 이렇고 저런 일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너무 속이 상하고 기분이 나빴어. 그러니깐 난 오늘 이 정도 돈을 써도 되는거야. 하는 이런 심리.
그러니깐 기분이 나빠지게 된 계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쇼핑이라는 행위로 부터 위안을 얻으려는 행위 말이다.

   어떤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고, 나 혼자 심각해선 내가 봐도 혐오스러운 짓을 일삼다가 보기 좋게 지금 이 따위 밖에 안된 내가 위로랍시고 그 분께 제발 구원해 달라고 손을 내밀어봤자. 그게 되겠나? 그 분이 무슨 대체품도 아니고 솔직히 지금 이 상황에서 손을 내미는 것은 그 사람의 대체품을 찾는 것 밖에 안되는데. 그리고 내가 이렇게 지칠 줄도 모르고 괴로워 하는 것 역시 그 분 때문도 아닌데. 뭐하러 그 분에게 손을 내미나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쇼핑중독에 걸린 사람이나 나나 다른 점이 뭔가.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것을 탐하고 옆에 두려고 하면서 위안이 된다고 착각하는 행동.

  결국에는 다 나혼자 시작하고 끝내버린 일에 대하여 예전 그 사람의 희생을 넘어서서 뭐하러 이 분까지 희생하게 만드나.

  물론, 그런 걸 다 알면서도 내 곁에 있으려는 그 분의 생각도 다 알지만, 그 분의 애인이랍시고 옆에 있어봤자 득이 될 게 뭐가 있겠는가. 그 분을 생각해서 이런 얘기 하는 것이 아니다. 첫째로 그런 내 자신이 행복할지 의심이 되서 하는 얘기다. 난 이기주의자 니까 말이다. 그 분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인격이 훌륭하고 다정하고 앞으로 절대 곁의 여자에게 피해가는 짓을 안할 좋은 남자. 라는 것 이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 도대체 뭔가.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입에 잘 올리지도 못하고 아직도 어색해 해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감정인걸까? 불행히도 그것 보다는 우정에 더 가까운 감정인 것 같다. 그래 남녀 사이에도 우정은 있는 거니까.
 
  내 괴로움을 풀어줄 단 한 사람은 그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은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는 사람이고, 아마 이 괴로움은 영원히 미결된 채로 남아있다가 결국엔 잊혀지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시간이 계속 흐르고 또 흘러서 이젠 그 사람에 대하여 잘 기억나지 않는 상태까지 흐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제발 좀 위로 좀 해주십시오. 하고 기대서 민폐 끼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선 내 마음에 이제 그 누구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백지장 같은 상태가 되면, 또 누군가를 좋아하고 23살 때 내 자신을 미워하게 되고 또 상대방 또한 가시방석에 앉은 것 처럼 불편한 상태로 만드는 병신같은 방법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좀 성숙한 방법으로 고마운 분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지... 지금 성급하게 그 분 께 대답하고 어쩌고 하는 건 좀 아니란 말이다.

   정리가 안되지만, 좋은 사람이지만 위로는 되지 않는 그 분을 이제는 좀 멀리하고 나한테서 벗어나서 편안히 계시라고 작별인사를 해야할 때가 된 것 같다는 거다. 그 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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