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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역과 아라비아의 로렌스

위로 2007. 7. 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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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중3때 이후 처음으로 충무로역에 갔습니다. 충무로역을 지나갈 일은 많았지만, 그 역에서 내린 건 정말 중3 이후로 처음인 것 같네요.


제가 중3때 1962년 영화인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화면 음향 등을 재정비하여 개봉한 적 있어요. 아마 가을쯤이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 엄청나게 넓은 화면과 웅장한 사운드가 특정 극장에서만 개봉 가능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대한극장에서만 개봉을 했지요.

지금은 안 그렇지만, 제가 중3때는 나름대로 씨네키드 였습니다.


제가 영화를 좋아한 것은 마릴린 먼로를 좋아하시는 저희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젊으셨을 때 서울로 올라오셔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집에 혼자 있긴 싫고.. 그래서 퇴근후나 주말에나 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극장가서 혼자 영화보기셨다고 합니다.

훗. 저역시도 혼자 영화보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것마저도 닮은 것인가요?


어쨌든 저는 중3때 영화를 진짜 좋아하면 두번이상 봐야한다고 해서 보기 싫어도 꼭 두번씩 보고 쪼그만한게 뭐 안다고 매달 영화잡지 사보고, 사는 씨디라곤 영화음악 씨디가 대부분이었지요. 아. 신문스크랩도 엄청나게 했군요. 아아아아. 그러고보니 영화포스터도 셀 수 없이 많았구요. 제 방 정면에는 제임스딘 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포스터가. 왼쪽으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가. 책상 밑에도 영화엽서를 빼곡히 끼어 넣었지요.(그린파파야의 향기 나 해피투게더 등등) 영화음악 관련 라디오만 하루에 3개씩 꼭 들어서, 사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감독은 데이비드린, 영화음악은 모리스 자르. 이 콤비가 또 같이 작업한 영화는 닥터지바고 가 있다는 것도 중3때 이미 알았어요.


그래서 한 때는 영화학교에 가야지. 생각도 했어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이나 오손웰즈, 스탠리 큐브릭 영화 보면서 영화 평론가 같은 거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 엄청 폼나잖아요!! 사실 고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영화학교에 갈까 생각을 했는데, 제가 원하는 영화평론을 하면서 ‘돈까지 벌려면’ 적어도 UCLA 영화과 정도 나와야 가능 하겠더라구요. 대학 다니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여 저의 그런 오타쿠적 행태는 고2를 끝으로 마무리 지었죠. 뭐 그래도 나름 한때 영화애호가 였다고, 평론가들이 후지다고 하는 영화는 아직도 우습게보고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


저는 애교 많은 딸이 못돼요. 다른 애들은 쉽게 하는 아빠 팔짱끼기도 쭈볏거리면서 망설이지요. 중3때도 역시 그래서 아빠와 저는 둘이 나들이 나갔으면 같이 좀 다녀야지, 저도 아빠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었어요. 그 때 나이 애들은 부모님이랑 다니는 걸 좀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맹세코 저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왜 가까이 가지 못했는지 저 조차도 참 제가 원망스럽네요.  


여하튼, 닥터 지바고를 인생 최고의 영화로 뽑으시는 아빠도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어 하셨고, 맨날 영화기사만 오려대고 있는 저를 위해 저까지 함께 데리고 가기로 했죠. 그래서 저는 평론가들이 뽑는 위대한 영화 3위라고 말하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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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영화는 대단하더군요. 제가 그 영화를 보고 처음 느낀 감정은 ‘울렁거림’ 이었습니다.


위에 포스터와 제목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 영화는 아라비아 사막이 배경입니다. 엄청 큰 화면에 사막이 펼쳐지는 데 안 울렁거릴 리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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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배경인 영화는 엄청 많지요. 제가 기억나는 건 패왕별희,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씬 레드라인 정도 인 거 같네요. 그런데 제2차대전 당시 중동의 상황을 다룬 영화는 거의 없었고, 배울 기회도 없었기에 저는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구요. 매일 군복 입은 사람들이 수류탄 던지고 총 쏘고 하는 2차대전 영화 보다가 모래사막에서 터번 두르고 장총 쏘면서 싸우는 영화를 봤으니 얼마나 새롭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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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보이는 장면은 오마샤리프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영화를 보고 온 날 밤 저는 잠을 못 이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오마샤리프가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닥터지바고도 봤지만, 저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나오는 오마샤리프 모습이 훨씬 좋아요. 성질 건드렸다고 총쏘고 (위에 보이는 첫 장면에서 오른쪽에 있는 사람도 오마샤리프가 쏴 죽여버리죠;;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비장미 넘치고 로렌스가 영국으로 돌아간 대니까 눈물 나는 게 창피해서 도망가 버리는 터번 두른 모습 말이예요. 실제로도 오마샤리프는 이집트 출신이기 때문에 중동스러운 옷이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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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촬영한 곳은 요르단 이라고 합니다. 매번 느끼는 건데 경외를 느낄만한 건축물들과 풍경은 중동 쪽에 다 모여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유럽의 성당도 멋지지만, 중동의 유명 종교 건축물들과 비교해보면.. 솔직히 좀 초라한 느낌입니다. 연대로 따져도 그렇구요. 실제로 본 적도 없으면서 지껄이지 말라고 하시면 할 말 없지만. 뭐 사진으로 볼 때는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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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의 전쟁에서 헬름협곡의 전투를 명장면으로 뽑더군요. 저는 반지의 전쟁을 보면서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왜 그렇게들 좋아하는지 이해도 못하겠구요. 네네. 저는 반지의 전쟁 안티입니다.

밑의 사진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중 전투 장면입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아직도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스토리를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어요. 영국군 장교가 아라비아에 가서 그 곳 사람들과 함께 아라비아의 독립을 위해 싸운다는 내용이라는 것 밖에는. 그리고 오늘 처음 알았지만, 영화 속 전투의 상대는 터키 였다고 하네요. 영화는 꽤 씁쓸하게 끝나요. 아라비아군이 터키한테는 이겼지만 결국 또 영국에서 차지하려고 하는 식으로 끝나거든요. 로렌스의 표정도 허탈해서 멍하고 슬픈 표정으로 클로즈업 되구요. 순전히 16살 때 기억으로만 생각해내는 것이니 틀렸을 수도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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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니라, 이 영화는 1962년 영화기 때문에 CG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어요. 전투 장면도 100% 수작업으로 만들어 졌구요. 사진이긴 하지만 저게 다 진짜라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반지의 제왕 헬름협곡전투 하고는 비교자체가 불가하다고 말하고 싶군요. 흐흐흐.

아 그리고, 이 영화는 여자의 목소리를 단 한번도 들을 수 없는 영화로도 꽤 유명해요. 라이언일병구하기 에서도 여자가 안나왔던 거 같은데. 블랙호크다운에서도.. 안 나왔던 거 같고. 왜 이렇게 남성적 영화에 매료가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25살인 지금에도 갱스터 영화나 전쟁영화 좋아하는 거 보면.. 그 취향은 아직도 그대로인 것 같군요. 

저는 오늘 영화를 보러 충무로역에 간 건 아니었지만, 중3때 생각이 나서 기분이 꽤 좋았어요. 그리고 그 때 어린 저에게 이렇게 멋진 영화를 보여주셔서, 아직도 아라비아의 로렌스 와 사막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뛰게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했구요. 생각해보면, 저와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이 저랑 아버지는 취향서부터 성격까지 닮은 게 무지 많다는 건데,..

이런 얘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고, 오늘 그냥 아버지께 무지 고마웠어요. 철없는 짓 그만해야겠다고 생각도 했구요. 

스크롤의 압박이 엄청 심하겠지만, 그래도 나 혼자 볼 거니까.. 영화 속 사진을 더 올려야겠네요.
 

(오늘은 왜 말투를 이런 식으로 쓰는 지 저도 제 자신을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나 혼자 본다면서 편지체 라니? 응?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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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믿고 싶지 않은 진실이긴 한데 대학교 4학년 때 듣던 수업 교수님이 로렌스는 아라비아를 위해 싸운 게 아니라 영국의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몇 년 전 논문을 통해 밝혀졌다는 얘기를 하시더군요. 하하하. 저는 영화는 영화, 역사는 역사니깐. 하고 다시 영화를 보게 된다면 로렌스가 진짜로 아라비아를 위해 싸웠다고 생각하면서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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