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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월급

일상 2007. 9. 1. 23:33

저번주에는 첫월급을 탔다.
아르바이트 첫월급도 있었고, 전에 다니던 곳에서의 첫 월급도 있었지만.
어쨌든 정규직에서의 첫 월급이니까.
원래 돈이 적은 곳이라 별 기대는 안했지만.
뭐 역시.
훗.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덜 받는 곳도 가고 싶어서 안달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첫월급을 받아서 나는 시계를 샀다.
이제까지 차던 시계는 다 뉴코아 아울렛에서 구천원에 팔던 시계였는데,
생애 최초로 10만원 넘는 시계를 구입.
맘에 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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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는 돈을 드리고, 동생한테도 돈을 주고.
아는 사람에게 miller time 에서 술을 사고.
그러고 보니 여름에 맥주를 마신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첫월급. 생각보다 별 것 아니었고...
취직을 했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건 좋은건가 나쁜건가.
체력적으로 힘들면 마음의 평화가 올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고.
힘든건 힘든 것 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괴롭다.

요즘은 출퇴근길에서 읽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두께와 내용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을 읽고 있는데. (예전 일하는 데서 할일없을 때 빌려 읽다가 뒤에가 너무 궁금해서 그냥 구입) 거기에 나오는 스쩨빤 뜨로피모비치 라는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자기가 꾸었던 꿈에 대하여 집착하는 내용이 나온다. 하는 일과 일상에 아무런 자극이 없으니 꿈에라도 집착하는 수 밖에.

원래도 꿈을 아주 자주 꾸고 너무나도 현실적인 꿈을 잘꿔서 헛소리를 잘하는데.
예를 들면.
내가 쇼파에 누워서 낮잠을 잘 때 엄마가 왜 이불도 안덮고 자냐고 이불을 덮어줬는데. 일어나서 보니 그게 꿈인 줄도  모르고 엄마 어디갔냐고 하는 행동.
꿈속에서 친구한테 문자 보내놓고, 나중에 걔한테 그때 내가 문자 보내지 않았냐고 하는 행동 등.

직장 집만 왔다갔다 하는 무미건조한 생활을 딱 1개월 해놓고선, 위에 말한 스쩨빤 같은 웃긴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꿈에 집착하는 그런 사람.

어제밤에는 또 꿈을 꿨는데, 두려워했던 일이 꿈속에서 일어났다. 내 앞에서 여자친구 생겼다고 말을 하는 꿈이었는데 꿈임에도 불구하고 울다가 새벽에 눈을 뜨고 꿈인 것을 깨닫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지금의 마음의 평화가 오기까지 내가 얼마나 웃기고 정신병자 같은 인물이 되었는데. 이제와서 왜 그런 꿈을?
뭐 그런 웃긴 인간이 되버리고, 불굴의 의지로 안보기로 결심했으니까 이런 일이 꿈에서 일어났지. 아마 계속 알고 지났으면 어젯밤 꿈에서 본 꼴이 현실이었겠지.

금요일에는 6시쯤 퇴근을 했고 거짓말처럼 모든 지하철이 제때제때 와서 기분이 좋아져 있는데, 어떤 사람이 전화를 했고 같이 얘기하는 중에 평생 돈 한푼 안벌고 먹고 자기만 하는 남편 때문에 돈버느라 일생을 다 바친 내 주변의 어떤 여성의 얘기를 하게 되었다. 바로 그 타이밍에서 그 사람은 자기는 놈팽이가 아니라는 의미로 한 말이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난 괜찮은 남자야. 라는 말이었는데, 하긴 내 입장에서 이정도면 과분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자신감이 없어졌었다. 그냥 어버버 하면서 대충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좀 분했다.

아니. 난 그럼 지한테 안 괜찮은 줄 알어?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다 물어봐봐. 내가 너한테 그렇게 뒤떨어지는 여자인지.
너한테 나는 괜찮은 남자야. 라고 말한 거 자체가 내가 너 좋아하는 거 고마운줄 알아라. 이런 의도로 말한거 아니야 이거?
왠 잘난척?

이런 유치하고 오만방자한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나빠졌고,
아 내가 왜 아까 그렇게 주눅들어선 암말도 못해줬지.
왜이래 나도 괜찮은 여자야.
이렇게 말해줄껄 후회후회를 하다가.

동인천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집앞 정류장에서 내리던 중에.
버스 계단을 내려오면서 7cm 하이힐 신은 내 발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접질러서.
승객들에게는 몸개그를 선보이고.
나는 너무 아파서 그때 당시 울뻔했다가.
오늘 하루종일 절뚝 거리고 뭐 그랬다.;;

흠. 결국 첫월급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흘렀네.
뭐 첫월급이 생각보다 나에게 별 의미없이 다가왔으니 할말이 없는 것이 당연하지.
사실 너무나도 좁은 인간관계 때문에 첫월급 탔다는 자랑을 할 데도 별로 없었고,
한달동안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도 별로 없었고.

하.. 정말 내 20대를 이렇게 보내도 되는건가;;
입술이 건조해서 부르트는 걸 보니 확실히 이젠 여름이 간 것 같다.
가을.. 싫은데.
(하루종일 바깥에 한번도 안나가고 의미없는 인터넷 뒤지기와 TV 시청으로 토요일을 보내서 우울한 상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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