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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자신을 소중히

일상 2007. 10. 17. 14:47



한참 폐렴에 허덕일 때 온갖 나쁜 일들이 날 괴롭혀 댔는데
뭐 나의 여러가지 상황이야 그렇다 치고.

두통인 줄 알았다가 갔더니 의사가 매일같이 병원에 오라고 했다.
매일이었나 이틀에 한 번이었나.
여하튼 병원 가는 거 자체도 엄청 귀찮은데 (버스타고 가야했으므로)
겨울이라 옷도 두껍게 입었는데 매일 엑스레이 찍자고 그러고.
주사도 매일 맞고.
거깃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르바이트는 아르바이트 대로 이를 악물고 했다.

아르바이트 할 때는 오산에 있는 물류창고에서 물건이 들어오면 나는 바깥으로 나가서 그걸 끌고 들어와야 했는데 끌고 오는거야 바퀴달린 것이 대신해준대지만 물건을 바퀴달린 것에 싣는 것은 내 몫이었다.
물류창고에서 물건 싣고 온 아저씨는 여기 말고도 다른 곳을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지 전화받자마자 안 튀어나가면 짜증을 부리시곤 했다.
겉옷도 제대로 못 입고 뛰쳐나가면 아저씨는 물건을 잔뜩 내려놓으시곤 나보고 송장에 빨리 사인하라고 재촉하신후 트럭타고 가버리면 장땡이었다.

그때 당시 무거운 것도 무거운 것이지만 size is matter 였다.
내 팔길이로는 절대 들 수 없는 크기의 상자들이 대부분 이었는데, 추운 길가에서 찬바람 맞으며 어찌어찌 낑낑 대며 들긴 다 들었던 것 같다.
한 번은 주차 아르바이트 하는 남자애인지, 지나가다 보고 불쌍했는지 물건 옮기는 걸 도와준 적 이 있었는데 너무 고마워서 진심으로 울 뻔했다.

난 매일 미열이 나는 상태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게 끝나면 약속된 법칙처럼 병원을 갔다. 그날도 역시 매일 반복해온 것과 마찬가지의 '아르바이트 후 병원' 일정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저녁을 먹으려고 쌀을 씻는데 내가 쌀 2인분이 들은 양푼 하나도 들지를 못하는거다. 오른쪽 팔목이 너무 아파서 정말 들 수가 없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날 병원에 갈 때는 방사선과 내과 바로 옆에 있는 한의원에 들렀다.
한의원에서도 매일 병원에 오라고 하고, 되도록이면 오른팔을 쓰지 말라고 했다.
이제와서 생각이지만 난 가까운 곳에 있다고 무턱대고 한의원을 가지 말고 정형외과에 갔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아르바이트 후 병원 그리고 한의원' 이런 일정을 약 일주일동안 반복했다.
한의원에서는 딱 하루 진찰을 해주고 그 다음부터는 바로 바로 침 맞는 침대로 인도해줬는데. 사실 침을 맞는 그 기간에도 오산 물류창고에서는 끊임없이 물건이 올라오고 있었고 못말리는 오른손잡이인 내가 오른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아주 조금 차도를 보일 뿐 완전히 낫지는 않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며칠간은 한의원의 그 침대가 천국인 것 처럼 안락했다. 좁은 침대. 사면이 커텐으로 둘러싸인. 그리고 뜨끈뜨끈한 열기를 아낌없이 발산해주는 그 침대 말이다.
누워서 음악을 듣거나,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온기를 만끽하거나. 언제나 한의원에서 이제 내일 오세요 할 때면 아쉬움이 물 밀듯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어느날 어떤 계기에서 였는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 천국같던 시간이, 나에게 지독한 고독감을 안겨주었으니.
말솜씨 없는 내가 풀어쓰긴 너무 어려우니 영화 속에서 나온 장면을 빌리자면 굿바이 마이 프렌드(원제 : The Cure)에서 덱스터가 텐트에서 자다가 일어나서 말하는 거와 똑같은 감정을 느껴버렸다.  그래도 덱스터는 무서우면 내 신발이라도 안고 자라는 친구라도 있었지.

우주에서 나 혼자만 고립된 느낌 이라고 하면 유치하지만 꼭 그랬다.
물론 그때 당시 날 걱정하던 사람은 당연히 있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난 이렇게 지치고 아픈데 날 걱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병원을 열심히 다니라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내가 이렇게 아픈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고, 난 언제나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병원 왔다갔다 하는 구나. 하는 이런 서러운 감정.

그리고나서 나는 병원에 안갔다.

당연히 세월이 지났고 이후로 아르바이트도 관뒀고, 그 여파로 무거운 건 절대 안들려고 노력한 덕분에 내 팔목은 나아가는 듯 했다. 폐렴은 뭐.. 기침이 오래가긴 했지만 푹 쉬니까 자연히 나았고. 한가지 변한 점이 있으면 무거운 물건 잘 들어주는 남자한테 반하게 된다는 점 정도? 말고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근데 이게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이제는 이 오른쪽 팔목은 단단히 고질병이 되서 조금만 무리를 해도 나에게 통증을 호소하는데. 아니나다를까 우리회사는 남자가 별로 없을 뿐더러, 물류에서 본사로 물건이 오면 막내인 내가 가서 우리 팀꺼는 꼭 챙겨야 되는 입장이 된거다. 무거워 죽을 것 같고 분명히 그 다음날 팔이 욱씬거릴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허허.

또 사무직의 숙명으로 키보드와 마우스의 과도한 사용.
그래서 매주 수요일 쯤에는 내 오른쪽 팔 손목 손 등은 만신창이가 되는데 오늘 아침에도 파스를 붙이고 출근을 하고 삼천원짜리 파스를 사서 내 책상 서랍에 넣었다.

작년부터 시작된 증세라 나는 이제 마우스는 왼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대로가다가는 젓가락질도 칫솔질도 글씨쓰기도 왼손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은 건강염려증스러운 걱정을 하게 될 때도 있다.
더욱 문제는 이것으로 인해 약간의 우울증 증세를 보이던 그 때 당시 내 모습이 떠오르고, 나의 최대 약점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인 '자기연민' 에 빠지게 된다는 건데.

고쳐야겠다고 다짐은 했지만 이제와서 뭐 어떻게 이 손목을 처리할지 고심 중이다. 이런 경우 딱히 크게 아픈 것도 아니라..

어쨌든 이 일과 관련해서 며칠 전 난 황당한 행동을 하나 했는데,
그때 당시 날 걱정해줬던 사모님 (사장님은 no, no. 나 아픈거 알면서 맨날 밤에 불러내서 가게 마감하고 가라고 시켰다. 그리고선 사장님은 사모님 몰래 술마시러 go. go.) 기침한다고 했더니 인터넷에서 당근이 좋다더라. 하는 걸 보고 당근쥬스와 그 외 먹을 것을 사주었던 선배와 그 기간 중 유일하게 같이 병원 가준 친구 한 명과 그 이외 나에게 힘을 주었던 사람 중에 연락이 닿는 사람들을 위해 10만원 가까운 돈을 지출하며 철 지난 추석선물세트를 몇 개 구입한 것이 그것.

내가 왜 이런 황당한 행동을 하나 싶었지만 이미 한 개는 택배로 사모님께 보냈다.

그 때 우울하고 별것도 아닌 것에 자지러지게 반응하며 슬퍼했던 나에게 돌아간다면 좀 더 니 건강을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무리 누군가가 날 걱정해 준다고 해도 결국은 내가 챙겨야 하는 거 니까 말이다.
후훗. 당신은 소중하니까요.







p.s. 뜬금없는 저 음악은 회사에 mp3 용 usb 케이블을 가져다 놓은 기념으로. 유일하게 일본곡 중에서 좋아하는 곡인데. 내 자장가로 자주 쓰이곤 한다. 우타다 히카루를 좋아하는 건 절대 아니고. 그냥 유일하게 저 곡만 좋아한다. 특히 마지막에 '좋아하고 좋아해서 어쩔 수 없어.' 라고 말하는 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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